제 1화. 초기 교회 – 초기 사도시대
신약의 주요 세 사도들 – 베드로, 바울, 요한
1. 베드로(BC 2년경 – AD 69년경)
그의 이름은 시몬이며, 처음 주님과 만났을 때 주님으로부터 게바라는 이름을 받았다. 이것은 아람어이며, 헬라어로 베드로라는 말과 동일하며 둘 다 ‘돌’을 의미한다. 그의 아버지는 요한이었고, 형제는 안드레였으며 그의 아내가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막 1:30, 고전 9:5). 그는 벳세다에서 살았으며 후에 가버나움에 살았는데 둘 다 갈릴리 호수 연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의 직업은 어부였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안드레와 베드로 자신도 예수님의 열두 제자로 따르기 이전에 침례자 요한의 제자였을 것으로 추론된다.

베드로가 주님께 “주님은 그리스도이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건축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반석은 그리스도를 가리킬 뿐 아니라,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를 가리킨다. 주님은 또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들을 주었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베드로가 사용한 두 열쇠가 있었다. 하나는 베드로가 오순절 날 유대인 믿는 이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사용했고(행 2:38-42), 다른 하나는 고넬료의 집에서 이방인 믿는 이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여는데 사용했다(행 10:34-48). 그러므로 주님의 약속에 따라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였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눅 22:31-34, 54-62) 부활 안에서 주님은 베드로를 회복시키셨다. 그리고 요한복음 21장에서 주님은 그분에 대한 베드로의 사랑을 회복하고 계셨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처음 두 번 이렇게 물으신 것에 대한 기록은 흥미롭다. “그대가 나를 사랑하십니까?” 주님이 사랑에 대해 사용하셨던 단어는 헬라어로 ‘agapao’인데, 이것은 ‘보다 높고 고귀한 사랑’을 가리킨다. 그러나 주님을 향한 베드로의 대답에서 그는 다른 단어를 사용했는데, 헬라어로 ‘phileo’이며 이것은 ‘친밀한 사랑을 나타내며, 애정을 갖는 것에 관해서는 포괄적인 사랑’을 가리킨다. 주님이 그분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을 때 사용하신 ‘사랑’이라는 두 단어는 모두 ‘phileo’였다.
오순절 날 베드로는 주님을 위하여 담대하고 강하게 증언했다. 그는 또한 고넬료의 집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나중에는 아시아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안디옥에서의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순수한 믿음에 있어서 매우 약했다(갈 2:11-1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주님의 신실한 증인이었으며 약 주후 69년에 70세의 나이로 순교의 길을 택했다(요 21:19).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매달리는 형벌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그가 십자가를 바라보았을 때, 그는 관리들에게 일반적인 방식으로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하여 고통 받게 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였다. 이것은 그가 주님과 같은 자세로 고통 받을 가치가 없다고 단언했기 때문일 것이다. 베드로는 그의 이름이 담긴 두 서신을 썼는데 베드로전서는 유프라테스의 바빌론에서 쓰여 졌는데 아마 주후 64년경 바울이 순교하기 이전일 것이다. 베드로후서는 로마에서 쓰여 졌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바울의 순교 후인 주후 69년경과 예루살렘이 파괴된 주후 70년 사이 베드로의 순교와 가까운 시점이었을 것이다.
2. 바울(주후 1-5년경 –67년)
다소의 사울은 그의 유대인 이름이었다. 바울(‘작다’라는 의미로 생명의 변화를 가리키며 회심 이후 주어진 이름)은 그의 이방인 이름이었다. 다소는 길리가이아 수도였다. 그곳은 상업적인 장소와 문학의 중심지고 유명한 곳이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의 교사들은 모두 다소의 사람들이었다. 바울은 ‘히브리인 중 히브리인(빌 3:5)’이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베냐민 지파이며 바리새파에 속했지만 다소에 정착하였다. 어떤 수단들을 통하여 그는 로마 시민권을 얻었으며 그로 인해 그의 아들은 태생부터 로마 시민이 될 수 있었다.
다소의 바울은 천막 치는 일을 배웠다. 사도행전 22장에 따르면 유대인들이 자신의 아들에게 생업에 대한 일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건전한 관습이었다.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들의 율법에 관해 엄격한 훈련을 받으며’자랐다. 역사는 가말리엘을 저명한 법학박사 중 한 명으로 평가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삼중의 상속 ‘유대종교, 헬라문화, 로마정치’를 받고 태어났다. 신약은 바울이 인상적인 용모를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바울에 관한 고대의 전통적인 묘사는 그를 ‘키가 작고, 머리숱은 적었으며, 다리는 구부러졌고, 체형은 양호하며, 눈썹은 가운데가 붙었고 코는 약간 휘었으며 기품이 넘쳐 때로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때로는 천사의 얼굴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라고 기술한다.
바울은 회심하기 이전에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박해하였고 결박하였다. 그는 다마스쿠스로 가던 도중 주님의 나타나심을 통해 돌이키게 되었다. 그는 주님에 의해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내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나에게 선택된 그릇(행 9:15)’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의 동쪽부터 시작하여 로마 서쪽에 이르기까지 네 차례의 사역 여행을 하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후서(주후 54년경), 갈라디아서(주후 54년경), 고린도전후서(주후 59-60년경), 로마서(주후 60년경), 빌레몬서(주후 64년경), 골로새서(주후 64년경), 에베소서(주후 64년경), 빌립보서(주후 64년경), 디모데전서(주후 65년경), 디도서(주후 65년경), 히브리서(주후 67년경), 디모데후서(주후 67년경)을 썼다. 그는 신약 성경 안의 총 열 네 서신서를 썼다.
골로새서 1장 25절에서 바울은 그의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신약에 바울의 열 네 서신이 없었다면, 신성한 계시는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서신서들을 통해, 또한 오직 그의 서신들을 통해서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항목들을 배운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신다. 그분은 반드시 우리의 생명이 되셔야 하고, 우리는 반드시 그분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의 체현이고, 비밀이며, 모든 긍정적인 것들의 실재이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이시며 새사람의 구성요소이시다.
셋째, 그리스도는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분의 몸이다.
바울의 부르심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고,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이시며, 그리스도는 몸인 교회의 머리이시다.”이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의 세 가지 중요한 요점들이다. 주님이 바울에게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바울은 “주님 누구십니까?”라고 물었고 주님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고 대답하셨다(행 9:4-5).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고 모든 것을 포함하신 분이시며, 몸의 머리이시라는 이 세 가지는 바울과 주님의 대화에 함축되어 있다. 바울은 주후 67년경에 가이사 네로의 박해 아래 투옥되었고, 같은 해인(딤후 4:6) 62-6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3. 요한(주후 6년경 – 98년경)
요한의 이름은 비둘기를 의미하는 구약의 ‘요나’ 또는 ‘여호와는 은혜를 주시는 자’를 의미하는 ‘여호하난’과 일치한다. 그의 아버지는 세베대였고 어머니는 살로메였다. 그녀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자매였을 것이다(막 15:40, 요 19:25). 요한의 형제는 야고보였다. 회심하기 전 그의 직업은 어부였으며 주된 일터는 갈릴리 호수였다. 주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언급하시면서 ‘천둥의 아들들’을 의미하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더했는데, 이것은 그들의 급한 성미와 열정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막 3:17).
요한이 주님에 의해 부르심 받았을 때, 그는 야고보와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다(마 4:21). 결국 요한은 그의 보수하는 사역을 통해 교회의 파손된 곳을 보수하는 참된 보수자가 되었다. 바울이 그의 마지막 저술을 마친 주후 67년 이후에, 교회를 손상시키는 다른 가르침들이 기어 들어왔다. 이단들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었으며 육체로 오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단들에 맞서기 위해 사도 요한은 주후 90년경에 그의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하나는 복음서이고 셋은 서신서이며, 마지막 하나는 계시록이다. 이 글들을 연구해 볼 때, 우리는 요한이 손상된 것을 보수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바울은 성경 안의 계시를 완성했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지 않아 손상되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복음서들 중 가장 끝에 기록되었고, 그의 세 서신서들은 서신서들의 결론이고, 마지막으로 계시록은 신약의 결론일뿐 아니라, 성경 전체의 결론인점을 알게 된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 때문에 밧모섬으로 유배되었다. 그가 여전히 밧모섬에 유배되었을 때인 주후 90년경에 그는 계시를 받아 요한 계시록을 썼다. 유배로부터 에베소로 돌아온 후에 에베소에서 그의 복음서를 썼으며(주후 90년경) 요한 1-3서 역시 주후 90-95년경에 에베소에서 썼다. 교회 역사가들에 따르면 요한은 그의 마지막 날들을 에베소에서 사역하였다. 그는 주후 98년경 약 92세의 나이로 자연사한 것으로 보인다. 사도 요한의 죽음으로 초기 사도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출처 — 성경진리사역원(BTMK) (2017.01.17)
이 페이지의 성경 인용은 「한국어 회복역 성경」(한국복음서원)을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