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화. 복음주의파 –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

그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의 남동부에 있는 블랜타이어(Blantyre)라는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10살에 가족의 생계를 떠맡았는데, 매일 아침 6시부터 밤 8시까지 블랜타이어의 방직공장에서 일했다. 일을 마친 후에는 8시부터 10시까지 회사의 야간 학교에 나갔다. 그 이후에도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자극하여 잠자리에 보내지 않으면 12시까지 앉아서 공부를 했다.
그는 틈나는 대로 방직 기계에 책을 꽂은 채 정보를 수집하고 언어와 과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역사, 여행, 그리고 많은 고전 작가들에 대해서 연구했다. 그는 방직 공장에서 처음 번 돈으로 라틴어 문법책을 구입했다. 그는 말했다.“고난의 시간을 지금 되돌아볼 때, 그것이 나의 초기 교육에서 너무나 필수적인 부분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가능하다면 나는 다시 그런 낮은 상태에서 내 삶을 시작하여 똑같은 어려운 훈련을 거치고 싶다.” 십대의 어느 날, 그는 믿는 이가 되었다.

그는 선교사로 부름 받은 것을 이렇게 기록했다. “기독교 신앙이 불러일으키는 사랑의 빛에 나는 즉시 나의 일생을 인류의 비극을 경감시키는데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마음속으로 이것을 생각하다가, 중국의 기독교의 선구자가 되는 것이 그 거대한 제국의 일정 부분에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그 모험에 걸맞은 자격 요건을 갖추기 위해 의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그의 직업은 그가 글래스고에서 의학과 신학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그를 뒷받침해주었다. 그가 의사가 된 후 런던선교회에서는 그를 의학 선교사로 받아주었다. 그때 중국에서는 아편전쟁이 발발하여 그곳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1840년에 남아프리카로 떠나 1841년에 런던선교회의 유명한 선교사였던 로버트 모팻(Robert Moffat)과 합류했다. 리빙스톤은 후에 모팻의 딸인 메리와 결혼한다. 크루만(Kuruman)의 선교 거점에 도착한 즉시 그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 북쪽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그는 그가 복음을 전해서 믿게 된 유일한 믿는 이가 족장으로 있는 바코에나족(Bakwena)과 정(情이) 들었다. 족장은 부족의 남은 이들이 믿는 이가 되게 하려면 그들을 채찍으로 때려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리빙스톤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아프리카 오지를 여행하는 생활은 고되고 위험했다. 리빙스톤은 열대질병과 가족과의 별거, 독화살을 가지고 있는 적대적인 부족들과 부족한 음식, 열대 기후와 야생 동물들의 공격과 같은 것들에 고초를 겪었다. 한번은 리빙스톤의 어깨가 부러졌고, 그의 팔에는 사자의 공격으로 열한개의 이빨 자국이 남았다. 리빙스톤의 세 차례에 걸친 중부 아프리카로의 여행은 그가 나중에 선교를 위해 일할 말라위, 우간다, 탄자니아, 자이르를 포함한 넓은 지역을 열게 했다.

· 나는 앞이 있다면 계속 나아갈 것이다.
·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것을 제외하고 나는 어떤 것에도 가치를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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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성경진리사역원(BTMK) (2017.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