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슨 테일러 (1)

그는 영국 요크셔(Yorkshire) 지방의 반즐리(Barnsley)에서 태어났다.

제 31화. 복음주의파 –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 (1)

그는 영국 요크셔(Yorkshire) 지방의 반즐리(Barnsley)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약제사였는데, 그 지역의 아주 적극적인 감리교 설교자이기도 했다. 1830년 즈음에 그의 아버지는 중국에 있는 몇 백만의 이교도인들에 대하여 애석함을 느꼈다. 그 자신은 그렇게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을 중국에 헌신해 드리겠다고 기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특정한 갈망을 아들에게 표시하지는 않았다. 허드슨 테일러가 네다섯 살이 되었을 때 종종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른이 되면 나는 중국에 선교를 가겠어요.”

1849년 6월, 허드슨 테일러가 17살이 되었는데, 그는 이때의 일을 후에 이렇게 기록했다. “나의 회심을 위하여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와 이제 브룸홀 부인이 된 아멜리아 누나의 기도가 어떻게 응답을 받았는지 이야기하고싶다. 내가 절대 잊을 수 없는 어느 날이었다. 내가 17살 정도 되었을 때,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았고 나는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오후에 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책들을 찾아보려고 아버지의 서재를 둘러보고 있었다.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팸플릿들을 뒤적거리다가 한 복음지가 내 주의를 끌었다. 그리고 그 시각에 나와 70혹은 80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나의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아는바가 전혀 없었다.

나의 어머니는 그날 오후 저녁 식사자리에서 아들의 회심을 위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일어섰다.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 그녀의 기도가 응답받기 전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기도했고, 더 이상 기도할 수 없을 때까지 기도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그 영께서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회심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같은 시간에 그 작은 복음지를 집어 들었다. 그때, 하나의 글귀가 내게 강하게 와 닿았다. ‘그리스도의 일의 종결’ 그리고 나의 생각은 더 나아가 만약 모든 일이 끝났고 모든 빚이 갚아졌다면, 내가 할 일이 무엇이 남아 있는가? 그러고 나서 신성한 영이 나의 영혼이 빛을 비추자 기쁜 확신이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는 다만 무릎을 꿇고 이 구원자와 그의 구속을 받아드리고 영원히 그를 찬양하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의 어머니가 그녀의 방에서 무릎을 꿇고 찬양을 하고 있었을 때, 나는 혼자 오래된 창고 안에서 이 작은 책을 읽으며 그분을 찬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이 지난 후 누나가 내 영혼의 구원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나서야 그녀에게 이 기쁜 소식을 털어놓았다. 2주 후에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셨고 나는 문가에서 처음 그녀를 맞이하며, 어머니에게 전할 반가운 소식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는 다만 나의 목을 끌어안고 자신의 품으로 나를 당기며, ‘알고 있단다, 아들아 나는 이 주 동안 네가 나에게 전해줄 기쁜 소식에 대해 즐거워하고 있었단다’, ‘어떻게요?’ 내가 놀라 물었다. ‘누나가 약속을 어긴 것인가요?’ ‘누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요’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는 이 일을 사람에게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고 나를 확신시키셨다. 그리고 위에 말한 사건들을 내게 말해주셨다. 당신이 보기에도 이런 강력한 기도 가운데서 내가 믿는 이가 되지 않았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난 후, 나는 나의 것과 같은 모양의 작은 노트를 내 것인 줄 알고 펼쳤다. 나의 시선을 끈 문장들은 짧은 일기의 시작이었다. 그것은 누나의 것이었는데, 그녀는 남동생의 회심을 위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실 때까지 매일 그분께 기도로 나아갔던 것이다. 정확히 한 달 후에 주님께서는 나를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 주셨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고, 이런 상황 속에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부터 약속들이 너무나 실재적이고, 기도는 하나님과 한 사람, 또는 그분의 축복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의 엄중하고 상호적인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주님의 중국으로의 부르심에 대하여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썼다.‘내가 회심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서 나는 방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하나님과 함께 보내고 있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나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쏟아냈다. 그리고 다시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하신 하나님께 감사가 가득한 사랑을 고백하였다. 그런 다음 나의 사랑과 감사를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그분을 위하여 할 일을 구했다. 스스로를 부인하는 일, 그것이 고되거나 비천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나를 위하여 많은 것을 하신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원했다. 내가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내가 진지하게 내 자신과 나의 인생, 친구들, 나의 모든 것을 제단위에 올려 헌신했을 때, 깊은 엄중함이 나의 영혼을 덮었고 나는 내가 드린 것이 받아드려졌음을 확신했다. 하나님의 임재는 형언할 수 없이 실재적이었고 신성했다. 나는 땅바닥에 몸을 대고 말할 수 없는 경외감과 기쁨으로 그분 앞에 조용히 누워있었다’

내게 어떤 일이 안배되었는지 알지 못했지만 나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라는 깊은 의식이 계속하여 나를 지배했다. 그것은 매우 사실적인 느낌이었다. 2, 3년 후에 나는 드물게 좋은 제안을 받았는데, 그것은 나의 친구이자 교사인 의사의 견습생이 되어 의학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감히 구속력이 있는 계약을 받아드릴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내어 줄 수 있는 자신의 소유가 아니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언제, 또 어떻게 그분의 일을 위하여 부르실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몇 달의 헌신 기간 동안, 주님께서 내가 있기를 원하시는 곳은 중국이라는 인상이 내 영혼에 새겨졌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목숨을 걸어야 할 만한 일로 보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 중국은 지금처럼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달의 헌신의 기간 동안, 주님께서 내가 있기를 원하시는 곳은 중국이라는 인상이 내 영혼에 새겨졌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목숨을 걸어야 할 만한 일로 보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 중국은 지금처럼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고향의 조합교회의 목사 한분이 메드 허스트의 ‘중국’ 이라는 책 한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 연락해 그 책을 대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친절하게 허락했고 나에게 왜 이 책을 읽고 싶어 하는지 물었다.

‘그곳에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가 물었다. 나는 전혀 모르겠다고 말하며 열두 제자나 칠십 명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갑이나 푼돈도 없이, 나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기 위하여 나를 부르신 분을 의지하여 가야 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 목사는 친절하게 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젊은이여, 그대가 나이를 더 먹게 되면 그것보다는 더 현명해 질 걸세’ 나는 그때보다 나이를 더 먹었지만 더 현명해지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그분의 인도를 따르고 그분께서 그분의 첫 번째 제자들에게 준 보증을 우리의 지침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제자들이 그분께 받았던 것을 우리의 시대에 맞게 적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느꼈다.

출처 — 성경진리사역원(BTMK) (2017.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