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화. 감리교 – 존 웨슬리(John Benjamin Wesley) (2)

감리교의 복음주의자로서의 존 웨슬리의 일생은 바울의‘여러 번 여행하는 동안에(고후 11:26)로 설명할 수 있다’ 여행은 대부분 말을 타고 다녔는데 그는 하루에 60-100km을 다녔다. 말을 타며 글을 읽고 어떤 때는 하루에 다섯 번 설교를 하기도 하였다. 그의 생애가 끝날 무렵 그의 친구 한 명이 그의 여행을 위해 마차를 선물했다. 존은 일생 40만km 이상을 순회하였고 약 42,000번의 설교를 하였다. 그는 4시에 일어나서 첫 설교를 오전 5시에 시작했으며 보통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하루 종일 개인적으로 기도했는데, 그 기도는 보통 짧은 찬양의 기도였다. 밤에는 하루를 돌아보고 철저하게 자신의 죄를 자백했다. 그는 또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기도에 대한 응답 외에 아무것도 마옵소서.” 그의 기도실은 침실 옆에 있는 작은 방이었다. 이 기도실에서 그는 밤낮으로 기도했다. 감리교인들은 이 집을 ‘능력의 집’이라고 불렀다. ‘기도는 참으로 능력의 근원’이다. 이 기도실에서 존은 말했다. “나는 홀로 앉아 있고 오직 하나님만이 여기에 계신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나는 그의 책을 펴서 읽고, 그렇게 배운 것을 나는 가르친다.”
그는 극도로 깔끔하고 정돈된 사람이었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있을 때 즐거워하는 학자였다. 그가 겨울에 런던에 있는 집에서 머물 때, 그의 방과 서재에 있는 책은 모두 제자리에 있었고 심지어 스크랩한 종이한 장도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천마일의 여정을 떠날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그는 군중 속에서 살았다. 그는 언제나 학생으로서 많은 책들을 가지고 다녔고 설교 일정 사이사이에 이동하면서 책을 읽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깨어 있는 시간에는 누구나 일이 있지만, 존 웨슬리보다 자는 시간이 부족했던 사람은 없다.” 그는 책과 소책자와 서신들을 광범위하게 썼다. 그는 읽고 연구했으며, 기도하고, 설교하고, 여행을 다니며 또 여러 번 방문했지만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그는 많은 반대를 받아서, 돌에 맞거나 폭도들의 습격을 받았고 성직자들의 조롱을 받았다.
1784년 존은 토마스 콕(Thomas Coke)과 다른 이들을 미국에서의 사역을 위해 임명했다. 이것은 영국 국교회와의 공식적인 결별의 시작이었다. 감리교 운동은 아일랜드 지역 목사인 필립 엠버리(Philip Embury)에 의해 미국에서 수행되었다. 1766년 엠버리는 뉴욕에 있는 그의 집에서 감리교 집회를 조직했다. 그 후에 그는 1768년 뉴욕에 교회를 세운다. 이 운동이 확산되자, 1771년 존은 확산되는 감리교를 관리감독하기 위해 프란시스 애즈버리(Francis Asburry)를 보낸다. 1790년에 성도 수가 6만명에 육박하자 존 웨슬리는 콕(Coke)을 애저브리를 돕기 위해 파견한다.
1790년 1월 1일 존은 이렇게 썼다. “나는 지금 노인입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죽어가고 있습니다. 나의 눈은 흐릿하고, 나의 오른쪽 손은 아주 떨립니다. 매일 아침 나의 입은 매우 뜨겁고 건조합니다. 거의 매일 열이 나고 나의 동작은 약하고 느립니다. 하지만 나의 일에 충실하여 여전히 쓰고 설교할 수 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존 웨슬리의 생애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그는 1790년 10월 7일 윈첼시아(Winchelsea)의 야외에서 마지막으로 설교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복음을 믿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눈물에 젖었다. 그의 실내에서의 마지막 설교는 1791년 2월 22일 수요일 레더헤드(Letherhead)였다. 그곳에서 “주님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찾아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티로드의 그의 집으로 돌아왔고 2월 25일 금요일 급격히 쇠약해진다. 그는 윌리엄 윌버포스(Wiliam Wilberforce)에게 그의 마지막 편지를 썼다.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능력의 힘 안에서 계속 나아가십시오. 그 앞에서는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가 집에 앉아 있을 때 그는 말했다. “나는 이것 외에 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죄인 중에 죄인이지만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2월 28일 월요일 그는 더 쇠약해졌다. 그는 하루 종일 잠을 잤다. 상태는 약해져 있었지만 인상적인 태도로 그가 말했다. “오직 예수님의 피를 통하여 거룩하게 될 수 있다.”
벳시리치(Betsy Ritchie)에 따르면 3월 1일 목요일, 잠을 들지 못하는 밤에 존 웨슬리가 그녀에게 자신이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벳리리치의 기록이다. “나는 그에게 펜과 잉크를 가져다 그의 손에 쥐어주었고, 그의 앞에 종이를 들어 주었다.” 그때 존이 말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제가 대신 쓰겠습니다. 목사님, 저에게 쓸 것을 말씀해 주세요.”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그가 말했다.“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는 아이작 왁츠가 쓴 찬송가를 마지막으로 불렀다.
내가 숨 쉬는 한 나의 창조주를 찬양하리.
내가 죽어 목소리를 잃는다면
더 고귀한 능력을 사용할 것이라.
찬양의 날들은 지나가지 않으리.
생활과 생각과 마지막 때까지,
그리고 영원한 생명 안에서.
존은 침대로 돌아와서 누워서 기도와 찬양을 제안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장례식을 위해 몇 가지를 지시를 했다. 잠시 조용히 누워있더니 그가 속삭였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저었다. 그는 승리의 순간에 기뻐서 소리치는 군인처럼 외쳤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1791년 3월 2일 수요일 오전 10시 신실한 한 무리의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의 침대 곁에 둘러섰다. 조셉 브래드포드(Josep Bradford)가 기도를 주관했다. 그리고 그는 런던에서 87세에 세상을 뜬다. 존 웨슬리는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될 뿐만 아니라, 또한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다는 진리를 회복했다. 다음은 존 웨슬리의 말이다.
· 사람을 이해 할 수 있는 벌레를 가져와 보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에게 하나님을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을 보여 줄 것입니다.
·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
·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구원하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어라.
· 모든 것의 최선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출처 — 성경진리사역원(BTMK) (2017.06.12)
이 페이지의 성경 인용은 「한국어 회복역 성경」(한국복음서원)을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