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화. 주님의 현재의 회복(The Present Recovery of the Lord – 위트니스 리(Witness Lee) (1)

1. 서문
위트니스 리는 현 시대에서 신성한 계시를 수행하는 그리스도의 노예였고, 다른 한편으로 주님은 그에게 그분의 회복을 위해 더 많은 계시를 보여주셨는데, 특별히 그가 대만으로 이주하고 그 후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 그러했다. 위트니스 리의 사역은 풍성하고 광대하며 생명과 진리와 교회실행과 봉사와 복음의 방면에서 균형 잡혀 있었다. 1996년까지 중국 본토를 제외하고 2,450개의 교회들이 전 세계에 걸쳐 그의 사역에 의해 도움을 받았다. 오늘날 주님의 회복 안의 교회들은 계속하여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역 아래 있어 왔다. 이 두 형제가 우리에게 제시한 것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따른 신약의 사역이다.
2. 위트니스 리에 대한 간략한 소개(1905년 9월 3일-1997년 6월 9일)
위트니스 리는 중국 산동성 펑라이에서 태어났다. 19세쯤 그는 200,000명 이상이 사는 산동성의 항구도시인 치푸에 있는 영어전문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1925년 19세 때, 왕페이징(Peace Wang) 자매의 복음전파를 통하여 구원받았고, 같은 날 오후,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헌신하였다.
처음에 그는 중화자립회에 나갔고, 또한 그 지역에 있는 형제회 사람들과 만났다. 하지만 그는 중화자립회를 2년 반 후에, 그리고 형제회를 7년 반 후에 떠났다. 그는 1930년 형제회의 버넷씨(Mr. Burnet)에 의해 침례 받았다. 일찍부터 그는 워치만 니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는 워치만 니의 간행물 기독도보와 그의 다른 글들을 읽음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비록 형제회가 그에게 성경에 나오는 교리들을 제시했지만, 그는 여전히 영적으로 죽어있음을 느꼈다. 일주일에 일곱 번의 집회에 참석했지만, 여전히 냉담했고 결실이 없었다. 그러다 1931년 8월, 그는 깊고 참된 회개를 체험하였다. 매일 아침 그는 그의 집 근처의 작은 산에 올라 필사적으로 주님께 외치고 눈물을 흘렸다. 이 체험은 몇 달간 지속되었다.
위트니스 리는 성경을 사랑했고 성경 읽는 것을 즐겼다. 그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빛 비춤을 받고, 비할 데 없는 달콤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밤 그의 침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에 여전히 성경을 내려놓지 않을 정도로 성경을 사랑했다. 오히려 그는 성경을 들고 침대로 가서 그의 베개 옆에 두었다. 그리고 등불 아래서 잠깐 동안 성경을 다시 읽은 후에 너무나 달콤함을 느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재빨리 손을 뻗어서 성경을 읽었다. 그가 주님의 품으로 가기 전 마지막 투병의 시간동안 의사들이 그의 지적능력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그에게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 한 가지를 써 보라고 했다. 즉시 그는, “나는 주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썼다. 잠깐 후에 그는 “바꾸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서는“나는 성경을 사랑합니다.” 라고 썼다. 따라서 그는 주님과 그분의 말씀인 성경 모두를 사랑했다.
1932년 그는 워치만 니를 처음으로 만났다. 워치만 니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치푸교회는 그를 통하여 세워졌다. 1933년 주님은 그에게 그의 헌신과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그의 약속을 생각나게 하셨다. 따라서 그는 전시간자가 되었다. 그 후에 그는 상해로 가서 워치만 니에게 온전케 함을 받았으며 동시에 워치만 니의 가깝고 친밀한 동역자가 되었다. 그는 워치만 니의 사역을 따르는데 신실했고, 주님으로부터 워치만 니가 받은 계시들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에 신실했다.
1942년 말 치푸에 대부흥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가 교회생활의 실행성에 관하여 워치만 니가 본 하나님의 계획의 청사진을 실행으로 옮겼고, 성도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목양했기 때문이었다. 후에 그가 결핵으로 인해 요양하며 쉬고 있을 때, 그는 생명나무의 원칙을 보았다. 그가 완전히 회복되었을 때 생명나무에 관한 메시지를 해방했는데 이것은 1946년과 1947년에 교회들 가운데 부흥을 가져왔다.
그는 1948년 워치만 니가 사역을 재개하는 수단이 되었다. 1949년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그는 주님의 회복을 위해 중국본토를 떠나 대만으로 가도록 워치만 니에게 지시 받았다. 이것은 그분의 회복 안에서 주님의 전략적인 움직임이었다. 그의 이주를 통해서 주님의 회복은 중국 밖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1949년 8월 1일, 그는 불과 300명에서 500명의 성도들과 함께 공식적으로 대만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5,6년 이내에 성도 수는 40,000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1950년 그는 워치만 니를 마지막으로 만났고, 워치만 니는 그에게 대만복음서원과 홍콩복음서원의 책임을 맡겼다. 1950년부터 1961년까지 그는 매년 필리핀을 방문하여 한 번에 3,4개월을 머무르며 마닐라 교회를 도왔다. 1951년에는 '말씀의 사역'이라는 중국어로 된 간행물을 출간했고, 같은 해 대만에서 전시간 봉사자들을 위한 첫 번째 훈련을 시작했다. 1953년에는 대만에서 4개월간 그의 첫 번째 공식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1945년 그의 첫 번째 라이프스타디(중문판)를 시작했고, 4개월만에 간략하게 성경전체를 다루었다. 이것은 1955년 1월에 끝났다.
1958년 그는 처음으로 미국, 영국, 유럽과 이스라엘에 갔다. 1962년 그는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따라서 이것은 주님의 회복을 영어권 나라로 가져왔다. 서양에서 영어로 열린 첫 번째 집회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에 관한 것으로서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렸다. 1965년 그는 스트림 출판(Stream Publishers)을 설립했는데, 나중에 이름을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Living Stream Ministry)로 바꾸었다.
1974년은 주님의 회복의 큰 전환점이었는데, 위트니스 리가 그의 라이프스타디를 저술을 시작한 해이기 때문이다. 그는 라이프스타디를 1995년 7월에 완성했다. 이것은 문서에 있어서 그의 주된 일이었다. 그는 또한 신약 회복역을 출판했는데, 이 안에는 그가 쓴 광대한 개요들과 각주들과 관주들이 포함되어 있다. 신약 회복역의 본문 또한 새로운 번역이며, 위트니스 리가 편집장이었고 그를 돕는 번역팀이 있었다.
그가 교회들을 새길실행, 즉 하나님의 정하신 길의 실행으로 이끌기 시작하면서, 1984년은 주님의 회복의 또 다른 큰 전환점이었다. 그는 새 길의 네 단계, 즉 복음을 통하여 낳고, 가정을 통하여 양육하고, 소그룹을 통하여 온전케 하며, 지역집회에서 신언을 통하여 건축하는 것을 실행하도록 교회들을 이끌었다. 따라서 현재의 교회 생활은 다만 집회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 중심을 두고 있다. 이러한 실행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의 기능을 발휘하게 하여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16절의 직접적인 성취를 가져왔다. 1986년 그는 타이베이 전시간훈련(FTTT)를 설립했다.
1989년 그는 영구적으로 대만에서 미국으로 돌아왔고, 아나하임 전시간훈련(FTTA)을 설립했다. 1992년 8월 그는 활력그룹에 대해 교통하기 시작했고, 1993년과 1996년에 다시 활력그룹에 대한 메시지를 해방하였다. 1994년 그는 회복이 다른 큰 전환을 갖도록 이끌었다. 그 해 2월에 그는“하나님이 사람 되심은 사람이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려하심이다.” 라는 최고봉의 진리를 해방하였다. 이 최고봉의 진리를 찬송으로 쓴 것이“어떤 기적 어떤 비밀인가!” 이다. 그는 이 찬송을 그의 가장 높은 찬송으로 여겼다.
1995년 10월에 그는 전립선암을 진단받았지만 세상을 떠나기 네 달 전까지 사역을 계속하였다. 위트니스 리는 1995년 라이프스타디를 완성한 후, 성경결정연구를 지속하였다. 그의 교회 실행에 관한 마지막 메시지는 1996년 활력그룹이었고, 생명에 관한 마지막 메시지는 1997년 2월에 해방한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을 체험함은 곧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것임이었다.그는 1997년 3월 24일자로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공개서신을 썼다.
“1994년 2월 신춘 중국어 집회 기간에 내가 ‘어떤 기적 어떤 비밀인가!’라는 찬송을 썼을 때, 나는 형제들에게 대적 사탄이 내가 신약 전체의 가르침에 따른 신성한 계시의 최고봉을 해방하는 것을 좌절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1995년 10월 나는 내 몸 안의 가시를 발견하였다. 이것은 사탄의 전달자로부터 온 것이었고, 나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주님의 넘치는 긍휼과 충분한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1년 이상을 더 살았고, 주님의 노예와 여러분의 노예로서 더 깊은 진리들을 사역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이 좋으며 우리 사랑하는 주님의 주권을 관심한다. 나는 전적으로 주권적인 뜻에 복종하며 그분의 온전한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 원한다...”
그는 1997년 5월 30일에 전립선암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1997년 6월 1일 주일에 기록된 그의 마지막 말들 중 하나는“나는 부활생명을 누리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였다. 그리고 1997년 6월 2일 그의 마지막 기도는“주여, 나를 강화시키소서. 주여, 당신의 회복을 강화시키소서. 주여, 당신의 회복을 강화시키소서.” 였으며 그의 마지막 말씀은 “희생하라!” 였다. 그리고 1997년 6월 9일 월요일 오전 9시 30분, 그는 92세의 나이로 주님 품으로 갔다.
이어서 볼 곳 — 위트니스 리
출처 — 성경진리사역원(BTMK) (2017.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