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화. 중세교회 – 로마 가톨릭 교회와 신학 체계
1. 서문
로마 가톨릭교는 590년 그레고리 1세가 교황이 되었을 때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은 두아디라 시대였다. 로마 가톨릭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이사벨이다. 그녀의 이단적인 가르침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혼합되었으며, 누룩이 더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누룩으로부터 지켜지기 위해 로마 가톨릭의 교리들, 가르침들, 실행들에 관해 분명해야 한다. 아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들, 가르침들, 실행들에 관한 것이다.
2. 일곱 성사(The Seven Sacraments)

성사라는 단어는 헬라어 ‘mysterion’에서 나왔다. ‘어떤 것을 신성한 것으로 따로 분별해 놓다’라는 의미이다. 일곱 성사에는 ‘모든 아이들이 거듭나서 세례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께 성별되지 않는다면 영원한 고통과 영원한 죽음의 고통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성세 성사가 있고, 성직자들이 침례를 통해 성령의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충만한 분량의 성령을 부어주는 의식인 견진 성사가 있다. 세 번째로 성체 성사가 있는데 이것은 감사 의식을 뜻한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찬의 다른 이름으로 미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해산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네 번째로 고해 성사가 있는데 고해 성사는 죄들에 대한 슬픔과 회개를 보이는 의식으로 이것을 통해 죄들이 사해질 수도 있다고 믿는 것이다. 종부 성사는 죽은 사람에게 그가 안전하게 영원한 행복의 항구에 도달할 수 있는 적합한 상태에 있도록 기도하고 기름을 붓는 의식이다. 이것 또한 성경적인 실행이 아니다. 신품성사는 거룩한 위계에 따른 성직자의 서임 의식이다. 마지막 혼배 성사는 혼인은 반드시 성직자들에 의해 수행되어야 하고, 성직자들은 결혼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이러한 두 가지 관행들은 모두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3. 여러 가지 우상숭배 형태의 이단
첫째로 마리아 숭배(Mary-Worship)이다. 마리아 숭배는 당초 4세기에 만연해 있던 금욕주의적인 사상으로부터 나왔다. 더욱이 대부분의 세계적인 종교들은 여신들을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는 여신이 없는 거의 유일한 종교이다.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도교적인 실행들로부터 여신의 사상을 가져왔다. 4세기 끝 무렵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바친 처녀들이 있었다는 소문이 퍼졌는데, 그 중에는 영원한 순결을 서약하며 자란 마리아가 있었다. 다시 말해 마리아는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에도, 잉태하는 중에도,그를 출생한 후에도 그녀의 순결을 지켰다는 것이다. 시리큐스 주교는 392년에 마리아에 관한 이러한 사상을 고수했고, 이것은 독신주의의 가장 이상적인 인물인 마리아에 대한 숭배를 가져왔다. 그러므로 많은 공의회들에서도 마리아를 유일한 처녀라고 언급하였다. 5세기인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로 높임 받았다. 동세기에 두 팔에 아기 예수를 안은 동정녀 마리아의 형상과 그림들이 많은 교회 건물에 걸리게 되었다. 마리아는 신속하게 직접적인 경배의 대상으로 부상하였다. 16세기에 이르러,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모 마리아의 무원죄 잉태설를 광범위하게 받아들였다. 다시 말하자면, “그녀가 잉태하는 처음 순간부터 동정녀 마리아는 모든 원죄의 더러움으로부터 지켰다.”는 것이다.
둘째는 성인숭배(Saint-Worship)이다. 초기 교회 시대에, 성인들과 순교자들은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았다. 이윽고 그들은 극도로 공경 받았고, 심지어 숭배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들의 추도식에는 기도가 드려졌다. 결국에는 성인들에 대한 기도는 통상적인 의례가 되었다. 많은 로마 가톨릭 신자들은 그들의 수호성인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성인의 날’이 자신의 생일이거나 생일과 가까운 날이 있는 성인을 골랐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성인들은 여분의 공덕을 축적하였고, 그들의 권능을 행사하여 그 여분의 공덕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인간이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들을 동정해 줄 수 있고, 그리스도보다 덜 경건해서 더 다가가기 쉽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만큼 쉽게 마음이 상하기 때문에, 어떤 재해라도 발생하면 그들의 상한 마음을 달래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어떠한 이단인가!

세 번째는 성물 숭배(Relic-Worship)이다. 성물 숭배의 역사는 그 특성상 성인 숭배와 유사하다.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에 성인과 순교자들의 성물에 대한 외경심은 적극적인 숭배의 좀 더 구체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이러한 성물에 대한 집착은 매 시대마다 강화되었는데, 특히 십자군에 의해 크게 활성화되었다. 이 중에서 주목할 만한 성물로는 거룩한 무덤에서 발견된 주님의 손톱, 성배, 마지막 만찬에서 사용된 녹색 잔, 거룩한 외투, 즉 우리 주님의 이음매 없는 외투, 진짜 십자가의 나무, 주님의 옆구리를 찌른 창 한 쪽, 주님의 얼굴이 기적적으로 새겨진 것으로 알려진 천 조각 등이 있다.

4. 로마 가톨릭 교회의 다른 교의들
첫째는 연옥(Purgatory)이다. 연옥이란 죽음 이후에 영혼이 정화되고 순화되는 중간 장소이다.의로운 사람들의 영혼들은 연옥의 불 꽃 속에서 일시적인 징벌에 의해 정화되고, 이것은 그들이 영원한 나라로 들어갈 수 있게 한다. 이것은 600년 그레고리 1세의 시대가 오기 전까기는 공식적인 로마 가톨릭의 교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교의 종교에서는 연옥이라는 믿음이 통상적인 것이나 성경에는 그러한 장소가 없다.

두 번째는 비밀 고해(Auricular Confession)이다 . 1215년 제 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적어도 일 년에 한번은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참회자는 그가 지은 여러 죄들의 세세한 부분들을 어떠한 회피나 애매한 표현없이 구체적으로 말한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가장 음란하고 악마적인 것들이 성직자의 귀에 쏟아 부어지고, 이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세 번째는 면죄부(Indulgences)이다. 이것은 죄로 인한 일시적인 징벌의 일부분 혹은 전체를 사면하는 것이다. 이는 주로 연옥에서의 고통과 관련이 있었다. 초기 시대부터, 범죄자에게 참회의 의무를 부과하는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관습이었다. 이 참회가 충족되었을 때를 사죄라 했고 돈이나 선한 행실의 참작으로 인해서 참회가 덜어지거나 완전히 면해졌을 때를 면죄라고 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첫 번째 공식적인 면죄는 11세기 초에 행해졌다. 13세기에 면죄부는 돈을 내고 팔렸으며, 16세기 마르틴 루터의 때에 이르러 교황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이를 팔았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12개의 면죄부는 살인의 죄를 사하고, 4개의 면죄부는 간음의 죄를 사했다고 한다.


5. 신실한 증언자들과 저명한 학자들
중세시대는 역사가들에 의해 암흑기로 인식된다. 성경은 닫혀 있었고 로마 가톨릭의 이단적인 교리들, 가르침들, 실행들이 만연해 있었다. 이 암흑기의 한 가운데에서도 주님은 그분의 엘리야 시대에 바알 신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던 7000명을 남겨두신 것처럼, 그분의 신실한 증언자들을 남겨두셨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신실한 증언자들을 ‘이단적’이라며 박해하였다. 의심할 바 없이 이들 중 몇몇의 실행은 급진적이었을 것이나 대체로 믿음에 있어서는 정통적인 사람들이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급진적이었으나 이단적이지는 않았다.
바울파(Paulicians)는 소아시아와 아르메니아에 있던 믿는 이들의 그룹이었다. 그들은 사도적 교회의 영적 계승자들이라고 주장하며 그들 자신을 로마 가톨릭 교회와 구별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들, 특별히 바울의 서신서들을 따름으로 바울파라고 불렸고 성경의 교리들을 지킴으로 주님을 따랐다. 그들은 믿는 이들에게 열정적으로 신약 성서의 본질을 보존하고 전수했다. 그들 중 주요한 인물들은 콘스탄티누스 실바누스와 서지우스이다.
보고밀파(Bogomils, 하나님의 친구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슬라브 이름)는 8세기 중반에 많은 수의 믿는 이들이 콘스탄티노플로 이주하여 많은 이들을 개종시키고 교회들은 세운사람들이다 . 주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은 바질인데 그는 전도하며 가르치는데 불굴의 의지를 가진 자로서 이방인들에게 어떤 것도 취하지 않고 자기의 손으로 직접 일하는 것을 지지했다. 그는 의사 일을 하면서 생활을 유지했는데, 나중에 콘스탄티노플에서 공개적으로 화형을 당해 주님을 위해 순교하였다.
알비파(Albigenses) 알비파의 이름은 그들이 함께 모인 프랑스의 한 마을 ‘알비’에서 유래하였다. 그들은 12세기와 13세기 남푸 프랑스 지방에서 번성했던 믿는 이들의 모임이었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의견을 달리하여 그들의 독자적인 집회를 형성하였고 단순하고 경건한 삶의 방식을 주장하였다. 그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피에르 드 브루에이스’인데 그는 여행하며 전도한 20년의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미신들로부터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그는 믿음과 침례에 관한 진리와 실행들을 회복하였고 1126년경게 생질에서 화형당했다.
왈도파(Waldensians) 왈도파들은 피드먼트 고원의 알프스 협곡에 사는 한 무리의 믿는 이들이었다. 이들의 기원은 사도들의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사도 교회의 내용들을 지켰고, 성경이 믿는 이들의 교리들과 교회의 질서 모두에 구속력 있는 표준이 될 것으로 여겼다. 그들 중 유명한 인물은 성공한 상인이자 은행원인 피터 왈도였다. 따라서 단체의 이름이 왈도파 혹은 왈데시안파인 것이다. 그는 믿는 이들을 두 사람씩 짝을 이루어 복을 전하러 가는 실행을 회복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여행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그들은 ‘리옹의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왈도는 성경에 대단히 관심을 갖게 되어서 성경의 일부분을 로망스 지방의 언어로 번역하도록 학자를 고용했다. 그가 보헤미아에서 수고한 많은 날들을 부흥을 가져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그들 중 대부분은 자신들을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보헤미아를 거쳐 여행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바쳤다.
출처 — 성경진리사역원(BTMK) (2017.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