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화. 종교 개혁 – 서문

15세기 후반부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인쇄술과 넝마를 종이로 만드는 기술이 발명되었고, 이는 종교개혁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기술들은 성경의 복사본들이 출판되고 보급될 수 있게 하였다. 성경은 1474년도에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고, 1475년도에는 보헤미아어로, 1477년에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로, 1478년도에는 스페인어로 출판되었다.
루터의 시대 때, 고해성사 또는 면죄부를 기반으로 하여 구원을 주는 로마 천주교와 중세 교회의 다른 폐해들에 대한 불만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의 마음속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에서,이 시기는 신실한 증인들과 선구자들이 일어나서 종교개혁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길을 닦는 시기였다.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이 하나님에 의하여 일으켜져서 큰 바벨론, 곧 로마 천주교에 대항하고, 성경 안의 진리가 밝혀지는 것을 위해 굳게 서며, 종교개혁을 이끌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마르틴 루터를 그분의 종과 종교개혁의 대변자로 선택하셨다. 종교개혁은 1517년, 마르틴 루터와 함께 시작되었다.

루터를 통한 종교개혁이 있었던 시기는 사데 교회의 시기였다(계 3:1-6). 이것은 두아디라 교회, 곧 로마 천주교에 대한 신성한 반응이었다. 종교개혁은 루터를 통해 수행된 위대한 회복의 역사였다. 이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의롭게 됨과 열린 성경을 주었다. 의롭게 됨은 오직 믿음에 의한 것이지 사람의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존 넬슨 다비는 루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루터에게서 수많은 영혼들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믿음의 힘을 봅니다. 나는 진실로 내가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성경을 읽음으로 로마 천주교가 아니라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볼 수 있었다. 열린 성경으로 인하여 교회 안에는 암흑기의 모든 어둠을 몰아 낼 수 있는 빛이 있었다. 그러나 계시록 3장에 따르면, 비록 루터의 종교개혁이 좋았을지라도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그것은 우리에게 합당한 교회가 아닌 국교회를 주었다. 루터의 시기에는 진리의 많은 항목들이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었다. 우리는 앞으로 연속하는 장들에서 루터를 통한 종교개혁 이후에 주님께서 어떻게 회복을 지속하셨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사데 교회 시기의 개신교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개신교(Protestant)라는 이름은 다음과 같은 배경에서 시작되었다. 1526년 첫 번째 슈파이어 회의는 종교의 자유를 지지하였다. 따라서 독일의 각 주는 그 주의 지배 군주가 종교적인 관행들을 유지하고 결정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1529년에 열린 제 2차 슈파이어 회의에서는 개신교를 종교로 하는 주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종교를 유지 할 수 있으나, 다른 주들은 반드시 로마 천주교로 남아있어야만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또한 개신교식 예배는 천주교를 종교로 하는 지역에서 허용되지 않지만, 천주교식 예배는 반드시 개신교를 종교로 하는 지역에서도 허용되어야만 했다. 이것은 종교개혁이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하도록 막는 처사였다. 그러므로 루터의 동역자인 필리프 멜란히톤을 필두로 한 개혁파들은 이러한 결정에 항의하였고, 이 항의로부터 프로테스탄트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그의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을 독일 비텐베르크 성당 대문에 못 박은 날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반박문에서 면죄부 체계의 악용을 비난하였고, 모든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숙고할 것을 요구했다. 루터를 통해 회복된 두 가지 주된 항목들은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됨이라는 진리와 열린 성경이었다. 독일에서의 종교개혁을 연구하기 위하여 우리는 마르틴 루터와 그의 동역자인 필리프 멜란히톤에 대해 알아 볼 것이고, 실레지아의 종교개혁을 위해서는 카스파르 슈벵크펠트, 독일어권 스위스 지방의 종교개혁을 위해서는 울리히 츠빙글리에 대해 알아 볼 것이다.
출처 — 성경진리사역원(BTMK)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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